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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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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당론(1755) – 영조 시대 노론과 소론의 피바람 을해당론(1755) – 영조 시대 노론과 소론의 피바람조선 후기 영조(英祖) 시대, 왕권을 둘러싼 정치 갈등은 사색당쟁(四色黨爭)이라는 이름으로 극단까지 치달았습니다. 그 가운데 1755년, 한 해에만 수많은 정적이 제거된 대사건, 바로 을해당론(乙亥黨論)이 벌어집니다.이 사건은 ‘정치적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건 숙청’이었으며, 조선 후반기 정치 지형과 영조 치세의 본질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을해당론의 배경과 전개, 그 여파와 오늘날 남는 의미까지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영조 시대의 정치 풍경 – 노론과 소론, 그리고 왕권18세기 조선은 정권을 잡은 노론과 이에 맞서는 소론, 그리고 남인·북인 등 다양한 당파가 경쟁하던 시대였습니다.노론은 세종·숙종 때부터 권력의..
조선 왕실의 예법 논쟁, 기해예송(1659) – 남인과 서인의 운명을 가른 상복 다툼 조선 왕실의 예법 논쟁, 기해예송(1659) – 남인과 서인의 운명을 가른 상복 다툼조선 시대 정치사의 숨겨진 파도 중 하나가 ‘예송(禮訟) 논쟁’입니다. 임금이 세상을 떠나고, 그 가족들이 얼마 동안 상복(喪服)을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나라 전체가 둘로 갈라졌던 사건. 특히 1659년에 일어난 기해예송(己亥禮訟)은 단순한 예법 논쟁을 넘어, 남인과 서인이라는 거대 정치 세력의 명운을 좌우한 대사건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기해예송의 배경, 전개, 그리고 조선 사회와 이후 정국에 남긴 의미를 깊이 있게 짚어봅니다. 1. 예법을 둘러싼 조선 왕실의 긴장 – 왜 상복이 문제였나?조선은 유교적 예법을 국시로 삼은 나라였습니다.왕실에서 상복을 얼마나, 어떻게 입는지는 단순한 가정 문제가 아니라 곧 국가의 ‘도리..
세종대왕과 대마도의 조약, 계해약조(1443) – 조선과 왜(일본) 사이의 국경, 교역, 그리고 현실적 타협 세종대왕과 대마도의 조약, 계해약조(1443) – 조선과 왜(일본) 사이의 국경, 교역, 그리고 현실적 타협조선의 외교사를 돌아보면, 명나라나 청나라와의 사대외교 못지않게 ‘왜(倭, 일본)’와의 관계가 민감한 시기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왜구(왜적)의 침입과 국경 지역의 혼란은 조선 초기 내내 끊임없는 고민거리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1443년 세종대왕이 대마도(쓰시마)와 체결한 계해약조(癸亥約條)는 동아시아 해상 질서와 한일관계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계해약조의 배경, 내용, 그리고 이후 조선-일본 관계에 남긴 의미를 살펴봅니다. 1. 조선과 왜구, 그리고 대마도의 현실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바다에는 ‘왜구’라 불리는 해적들이 들끓었습니다.이들은 주로 일본 ..
조선 왕실의 숨겨진 비밀회담, 정유독대(1600) – 선조와 광해군의 두 사람만의 대화 조선 왕실의 숨겨진 비밀회담, 정유독대(1600) – 선조와 광해군의 두 사람만의 대화조선왕조 500년 역사 속에는 공식적인 기록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비밀과 사적인 만남이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미스터리하고 흥미로운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정유독대(丁酉獨對, 1600)’입니다. 이 회담은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와 그의 아들 광해군이 단둘이 만나, 아무도 모르게 왕위 계승 문제를 논의한 비공식적 독대였습니다.이번 글에서는 정유독대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 당대 정치 상황, 그리고 이후 조선의 운명을 결정지은 이 짧은 만남의 의미를 깊이 있게 들여다봅니다.1. 임진왜란의 상처 위에서 – 선조와 광해군의 불안한 동행1592년부터 시작된 임진왜란은 조선 사회 전체에 씻을 수 없는 충격을 남겼습니다.임금..
세종대왕과 하늘을 읽다 – 1433년 혼천의 제작, 조선 천문학의 정점 세종대왕과 하늘을 읽다 – 1433년 혼천의 제작, 조선 천문학의 정점조선시대, 과학기술은 단순히 지식인의 취미가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움직임은 농사와 달력, 국가 제사와 밀접하게 연결된 '국가의 생명선'이었죠. 그 중심에서 왕실의 과학을 이끈 인물이 세종대왕이며, 그의 치세 아래 ‘혼천의(渾天儀)’라는 천문 관측기구가 탄생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혼천의가 왜 만들어졌고, 어떤 과학적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그것이 조선에 남긴 유산은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혼천의란 무엇인가?혼천의는 말 그대로 ‘하늘을 재는 둥근 기구’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천체 시뮬레이션 장치이자 관측 기계였죠. 지구를 중심에 두고, 천구(하늘을 감싸는 구)를 겉에 둔 구조로 태양·달·별들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관측할 수..
정조의 규장각 설치와 금서 해금 – 조선 지성의 르네상스를 이끈 왕의 선택 정조의 규장각 설치와 금서 해금 – 조선 지성의 르네상스를 이끈 왕의 선택조선 후기, 쇠락해가는 왕권과 복잡한 당파 싸움 속에서 새로운 전환을 시도한 군주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 제22대 왕 정조(正祖)입니다. 그는 실용적 지식과 학문을 통해 나라를 바로잡고자 했으며, 지식인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 핵심에 규장각 설치와 금서 해금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 개혁 조치를 중심으로, 정조가 어떻게 조선 후기의 지적 르네상스를 이끌었는지 살펴봅니다. 1. 왜 규장각을 만들었을까?정조는 즉위 초부터 당쟁의 폐해를 줄이고, 국왕 중심의 개혁 정치를 펼치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했던 것은 충성스럽고 유능한 인재들의 집단이었습니다. 단순히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신하가 ..
세자빈 장씨 사건 – 궁중 권력과 여성의 비극적 운명 세자빈 장씨 사건 – 궁중 권력과 여성의 비극적 운명조선의 역사에서 궁중의 권력 다툼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왕과 세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중신과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사건은 숙종의 첫 번째 세자빈이었던 장씨, 즉 훗날의 장희빈(장옥정)과는 다른 인물인 세자빈 장씨(1680~1701)의 비극적인 몰락 사건입니다.이 사건은 단순한 궁중 스캔들을 넘어, 조선 후기 정치의 이면과 유교 사회의 금기, 그리고 여성의 권력과 파멸이 교차하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1. 세자빈 장씨는 누구인가?세자빈 장씨는 영조의 생모였던 숙빈 최씨와는 다른 인물입니다.그녀는 숙종의 둘째 아들, 경종(훗날의 왕)의 정비로 책봉된 여인입니다.양반가 출신으로 지적이고 침착한 성품으로 평가받았지..
조선 후기, 민중의 꿈과 분노가 만난 이름 – 장길산의 난(1693~1698) 조선 후기, 민중의 꿈과 분노가 만난 이름 – 장길산의 난(1693~1698)조선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사회적 혼란과 저항의 상징, 바로 ‘장길산의 난’을 아시나요? 흔히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사화와 같은 왕권과 관료 집단의 대립에 집중하지만, 사실 가장 치열했던 싸움은 피지배층 민중의 일상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전설로만 전해지기도 하는 장길산과 그가 주도한 난의 진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조선 사회의 민낯을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1. “전설인가, 실존인가?” – 장길산이라는 인물장길산은 실제 조선 후기(숙종 대) 기록에도 등장하는 실존 인물입니다.그는 평안도 출신으로, 원래는 양반이 아닌 평민 혹은 천민 계층이었으며, 신분 사회의 벽과 부당한 수탈에 분노한 인물이었습니다.민중의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