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사 이야기

(37)
임진왜란의 서막, 동래성 전투(1592) – 무너진 성벽과 시작된 전쟁 임진왜란의 서막, 동래성 전투(1592) – 무너진 성벽과 시작된 전쟁조선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전쟁 중 하나인 임진왜란(1592~1598)은 단 하루 만에 전 국토를 전쟁터로 바꿔놓았다. 그 시작점이 바로 동래성 전투다.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한 첫날, 1592년 4월 14일, 부산 앞바다를 메운 일본군의 대규모 병력은 동래성으로 진격했고, 하루 만에 성이 함락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이번 글에서는 동래성 전투의 배경과 전개 과정, 방어군의 최후, 그리고 그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려 한다.1. 일본의 침공과 조선의 안일한 대응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명분으로 대군을 동원했다. 그의 야망은 조선을 ‘길’로 삼아 대륙을 점령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조선은 이를 심각하게..
백성의 눈물, 삼정의 문란 – 전정·군정·환곡이 빚은 민란의 시대 백성의 눈물, 삼정의 문란 – 전정·군정·환곡이 빚은 민란의 시대조선 후기, 나라의 기틀은 무너지고 있었고, 민심은 피폐해져 갔습니다.그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 바로 ‘삼정(三政)의 문란’입니다.삼정이란 전정(田政, 토지세), 군정(軍政, 군포세), 환곡(還穀, 곡물대여)의 세 가지 조세 행정을 말하는데, 본래는 국가 운영과 백성 보호를 위한 제도였지만, 조선 후기엔 이 제도가 도리어 백성을 파멸로 몰아넣는 폭력이 되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조선 후기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삼정의 문란이 왜 일어났고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함께 살펴봅니다. 1. 전정의 문란 - 없는 땅도 세금이 붙는다?전정은 땅에서 거두는 세금, 즉 토지세입니다. 본래 조선은 양전(量田..
조선 후기 최대 민란, 홍경래의 난(1811~1812) 조선 후기 최대 민란, 홍경래의 난(1811~1812)“가난은 참아도, 차별은 못 참는다”조선 후기, 평안도에서 시작된 한 번의 민란이 조선 조정을 뒤흔들었습니다.그 이름은 바로 홍경래의 난.이 반란은 단순한 지방 소요가 아니라, 오랜 차별과 불만이 폭발한 ‘체제 저항’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서북인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 정치 권력 독점에 대한 민심이 얼마나 극단으로 치달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죠. 이번 글에서는 홍경래의 난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1. 배경 – 서북인의 분노와 조선 후기의 병든 사회조선 후기, 평안도와 함경도 등 북방 지역은 늘 중앙 정부의 차별 대상이었습니다.양반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서북인은 ‘야만’, ‘믿을 수 ..
조선과 일본의 강화 협상, 정유절목(1597) 조선과 일본의 강화 협상, 정유절목(1597)전쟁 한가운데 체결된, 논란의 휴전 시도조선 역사상 가장 큰 외침 중 하나로 꼽히는 임진왜란(1592~1598)은 단순한 전투의 연속이 아닌, 외교와 정치의 복합적 국면이었습니다. 특히 전쟁 중반인 1597년에 체결된 정유절목(丁酉節目)은 조선 조정 내에서 커다란 논란과 분열을 일으킨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전쟁의 와중, 그리고 휴전이냐, 항전이냐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오갔는지를 보여주는 이 사건은 조선 외교의 복잡성을 잘 드러냅니다. 1. 임진왜란 중반의 정세 – 지치고 혼란스러운 조선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끄는 일본군이 부산포를 통해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쟁 초기 조선은 급격히 밀리며 수도 한양이 함락되고, 왕이 의주까..
조선 후기 평안도 차별 정책 – 제도적 소외가 낳은 갈등의 씨앗 조선 후기 평안도 차별 정책 – 제도적 소외가 낳은 갈등의 씨앗조선 후기, 조선의 북서부 지역인 평안도는 단순한 ‘변방’이 아니었습니다. 대동강과 압록강, 청천강을 따라 풍요로운 곡창지대와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곳이었고, 실학자 박지원·박제가를 비롯해 뛰어난 인재들이 다수 배출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신지’ 하나만으로 차별받은 곳, 바로 평안도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 후기 평안도에 적용된 제도적 차별과 그것이 불러온 사회적 갈등의 실체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왜 평안도는 차별의 대상이 되었는가? 조선 초부터 평안도는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한 ‘변방’으로 여겨졌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압록강을 경계로 청나라(명나라 포함)와 맞닿아 있었고, 역사적으로는 고구..
조선의 바닷길을 뒤흔든 난리, 삼포왜란(1510) – 왜인과의 교역, 그리고 갈등의 폭발 조선의 바닷길을 뒤흔든 난리, 삼포왜란(1510) – 왜인과의 교역, 그리고 갈등의 폭발조선 전기, 일본과의 관계는 마냥 적대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왜구의 약탈을 막고 동남 해안을 안정시키기 위해 조선 정부는 일정한 지역을 지정해 일본인들과의 교역을 허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양국은 일정한 평화를 유지해왔지만, 1510년 경상도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을 상대로 대규모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삼포왜란입니다.삼포왜란은 단순한 폭동이나 지역적 갈등이 아니라, 조선 초기 일본과의 외교·통상 구조가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자, 이후 조선의 대일 외교 기조를 바꿔놓은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1. 일본과 조선, 교역을 위한 묘한 동거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해..
조선과 후금의 첫 충돌, 정묘호란(1627) – 위기의 조선과 역사적 전환점 조선과 후금의 첫 충돌, 정묘호란(1627) – 위기의 조선과 역사적 전환점임진왜란이 끝난 지 채 30년도 지나지 않은 1627년, 조선은 다시 한 번 대외 침략의 공포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바로 만주에서 세력을 키운 후금(청나라의 전신)이 조선을 침공한 사건, 정묘호란(丁卯胡亂)입니다. 이 전쟁은 병자호란(1636)보다 먼저 일어난 첫 번째 청-조선 전쟁이자, 조선의 외교와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역사적 분수령이었습니다. 오늘은 정묘호란의 배경, 전개, 그리고 조선이 마주한 위기와 이후의 변화를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1. 배경 – 후금의 급부상과 조선의 흔들리는 외교임진왜란(1592~1598)이 끝난 이후 조선은 피폐한 국토를 복구하느라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한편 만주 지역에서는 누르하치가 후..
조선을 뒤흔든 대규모 내란, 이인좌의 난(1728, 무신란) – 영조 시대 반란의 진실과 교훈 조선을 뒤흔든 대규모 내란, 이인좌의 난(1728, 무신란) – 영조 시대 반란의 진실과 교훈조선 후기 영조(英祖, 1694~1776) 시대, 조정과 민간을 모두 충격에 빠뜨린 대반란이 있었습니다. 바로 1728년에 발생한 이인좌의 난(李麟佐의 亂), 혹은 ‘무신란(戊申亂)’입니다. 진주에서 시작된 이 반란은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되어 왕권과 사회 질서를 크게 뒤흔든 사건으로, 조선사에서 ‘최대의 내란’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오늘은 이인좌의 난이 일어난 배경, 전개, 그리고 남긴 역사적 의미를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배경 – 영조 즉위와 당파 갈등의 격화영조가 왕위에 오른 1724년 무렵 조선 정국은 극심한 불신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노론과 소론의 극단적 당쟁영조는 노론의 지지를 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