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속 개 이야기 – 임금도 기른 반려견
오늘날 반려견은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질 만큼 우리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조선 시대에도 개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문화가 있었을까요? 그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 바로 『조선왕조실록』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임금조차도 개를 기르고 다루었던 기록들이 남아 있어, 조선 사회의 동물 인식과 반려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궁궐 속 개에 대한 첫 기록, 세종의 명령
『세종실록』 22년(1440년) 5월의 기록에는 다소 의외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세종이 직접 “개를 묶어 두라”라고 명을 내린 것입니다. 이 명령은 단순히 궁 안에서 개가 돌아다니는 것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공식 행사를 앞둔 상황에서 개의 출입과 소란이 문제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궁궐 안팎에 개가 있었고, 왕실 내부에서도 이를 적절히 통제해야 했다는 현실입니다.
세종은 백성들의 생활을 깊이 헤아리는 애민군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궁궐의 질서와 예법도 매우 중시했던 왕입니다. 그의 명령을 통해, 조선의 궁궐에서도 일정 수의 개가 기르거나 관리되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왕실의 개는 사냥개였을까, 반려견이었을까?
조선 전기에는 왕이나 대신들이 사냥을 즐기던 풍습도 있었습니다. 사냥에는 개가 반드시 필요했고, 종종 사냥개의 종류나 훈련법에 대한 논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사냥 도구로서의 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왕실 내 여성들, 특히 중전이나 궁녀들은 비교적 작은 몸집의 개를 기르며 정서적인 교감을 나눈 사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인조실록』에는 어떤 내명부 여인이 개를 끌고 나오는 장면이 묘사되기도 합니다. 이는 개가 단순히 사냥을 위한 존재를 넘어, 애완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됩니다. 물론 ‘애완견’이라는 단어 자체는 근대적 개념이지만, 감정적 교감의 대상으로서 개를 대했던 태도는 분명 존재했던 것입니다.
유교 사회에서 개는 어떤 존재였을까?
유교적 질서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동물을 특히 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도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유교 경전에서는 개에 대해 특별한 금기를 두진 않았지만, 지나친 애완행위는 때로 질서 문란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왕실은 예외적인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왕의 사적 영역, 혹은 궁중 여성들의 공간에서는 개를 기르는 행위가 비교적 관대하게 수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종실록』에는 “개가 궁궐 안에서 소란을 일으켜 숙직관들이 당황했다”는 기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궁중의 일상 속에 개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서입니다.
개 이름이 등장하는 사료들
일부 문헌에서는 당시 개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승정원일기』나 『일성록』 등에는 궁중에서 기르던 개의 이름이 기록된 사례도 있습니다. 이 같은 이름 짓기 관행은 단순한 식별을 넘어서, 개를 인간처럼 존중하고 교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문화적 태도를 반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선 시대의 개는 ‘기능적 존재’와 ‘정서적 교감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던 셈입니다.
민간에서도 기르던 반려견
궁중만이 아니라, 민간에서도 개를 기르는 문화는 비교적 보편적이었습니다. 『연려실기술』이나 『동국여지승람』 등의 지리지에서도 지방마다 개의 종류와 사육 방식에 대한 언급이 드물지 않습니다. 특히 산간 지역에서는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개를 사육하여 외부인의 침입을 감시하거나, 잔치를 열 때 개고기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는 현대적 반려동물 개념과는 다르지만, 동물과 함께 생활해 온 오래된 전통을 보여줍니다.
조선 후기, 개를 향한 시선의 변화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반려동물로서의 개에 대한 인식은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홍길동전』이나 『춘향전』 등 고전 문학에도 종종 개가 등장하며 인간과 함께 감정을 나누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이는 개가 일상 속에 존재했을 뿐 아니라, 문학적 상징체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19세기에는 개를 훔치는 도둑에 대한 형벌이 강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물건이 아닌, 생명체로서의 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제도적 변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현대와 연결되는 조선의 반려문화
세종의 한마디 “개를 묶어 두라”는 단순한 명령이 아닙니다. 이는 조선 사회가 동물, 특히 개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오늘날 개는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받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뿌리를 조선의 궁중과 민간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개 이야기는 결코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으로도 『조선왕조실록』 속에서 개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며, 조선 사회의 문화적 다층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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