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눈물, 삼정의 문란 – 전정·군정·환곡이 빚은 민란의 시대
백성의 눈물, 삼정의 문란 – 전정·군정·환곡이 빚은 민란의 시대조선 후기, 나라의 기틀은 무너지고 있었고, 민심은 피폐해져 갔습니다.그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 바로 ‘삼정(三政)의 문란’입니다.삼정이란 전정(田政, 토지세), 군정(軍政, 군포세), 환곡(還穀, 곡물대여)의 세 가지 조세 행정을 말하는데, 본래는 국가 운영과 백성 보호를 위한 제도였지만, 조선 후기엔 이 제도가 도리어 백성을 파멸로 몰아넣는 폭력이 되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조선 후기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삼정의 문란이 왜 일어났고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함께 살펴봅니다. 1. 전정의 문란 - 없는 땅도 세금이 붙는다?전정은 땅에서 거두는 세금, 즉 토지세입니다. 본래 조선은 양전(量田..
조선 후기 최대 민란, 홍경래의 난(1811~1812)
조선 후기 최대 민란, 홍경래의 난(1811~1812)“가난은 참아도, 차별은 못 참는다”조선 후기, 평안도에서 시작된 한 번의 민란이 조선 조정을 뒤흔들었습니다.그 이름은 바로 홍경래의 난.이 반란은 단순한 지방 소요가 아니라, 오랜 차별과 불만이 폭발한 ‘체제 저항’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서북인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 정치 권력 독점에 대한 민심이 얼마나 극단으로 치달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죠. 이번 글에서는 홍경래의 난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1. 배경 – 서북인의 분노와 조선 후기의 병든 사회조선 후기, 평안도와 함경도 등 북방 지역은 늘 중앙 정부의 차별 대상이었습니다.양반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서북인은 ‘야만’, ‘믿을 수 ..
조선의 바닷길을 뒤흔든 난리, 삼포왜란(1510) – 왜인과의 교역, 그리고 갈등의 폭발
조선의 바닷길을 뒤흔든 난리, 삼포왜란(1510) – 왜인과의 교역, 그리고 갈등의 폭발조선 전기, 일본과의 관계는 마냥 적대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왜구의 약탈을 막고 동남 해안을 안정시키기 위해 조선 정부는 일정한 지역을 지정해 일본인들과의 교역을 허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양국은 일정한 평화를 유지해왔지만, 1510년 경상도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을 상대로 대규모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삼포왜란입니다.삼포왜란은 단순한 폭동이나 지역적 갈등이 아니라, 조선 초기 일본과의 외교·통상 구조가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자, 이후 조선의 대일 외교 기조를 바꿔놓은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1. 일본과 조선, 교역을 위한 묘한 동거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