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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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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시대 자동 물시계, 자격루 세종 시대 자동 물시계, 자격루조선의 기술력이 세계를 앞서간 순간조선 시대 과학 기술의 정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장영실’. 그의 대표 업적 중 하나는 1434년 세종의 명으로 제작된 ‘자격루(自擊漏)’, 즉 자동 물시계입니다. 단순한 시간 측정 도구를 넘어선 이 장치는, 당대 조선의 과학 기술 수준과 세종의 리더십, 그리고 장영실의 천재성을 집약한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격루란 무엇인가?‘자격루(自擊漏)’는 한자로 스스로 종을 치는 물시계라는 뜻입니다. 물이 일정한 속도로 흘러 시간이 차면, 인형이 나와 종을 치거나 북을 두드려 시간을 알리는 완전 자동형 시보 시스템이었죠. 단순히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장치로 기능했습니다.자격루는 사..
뒤주 속의 왕세자, 사도세자 – 조선 왕실이 감춘 비극의 서사 뒤주 속의 왕세자, 사도세자 – 조선 왕실이 감춘 비극의 서사조선 왕조 500년 역사 속에서도 가장 비극적이고 미스터리한 사건 중 하나.바로 사도세자(장헌세자)의 뒤주 죽음입니다.한 나라의 왕세자가, 그것도 아버지인 왕의 명령으로 뒤주(곡식을 넣는 나무상자)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이 사건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슬픔으로 남아 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사도세자 뒤주 사건의 배경과 전개, 조선 정치의 민낯, 그리고 후대에 남긴 의미까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왕세자 사도, 그는 누구인가?사도세자(1735~1762)는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정식 왕세자였습니다.그의 본명은 이선(李愃). 1749년, 불과 15세의 나이로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장차 조선의 국왕이 될 운명이었습니다.그러나 사도세자의..
세자빈 장씨 사건 – 궁중 권력과 여성의 비극적 운명 세자빈 장씨 사건 – 궁중 권력과 여성의 비극적 운명조선의 역사에서 궁중의 권력 다툼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왕과 세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중신과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사건은 숙종의 첫 번째 세자빈이었던 장씨, 즉 훗날의 장희빈(장옥정)과는 다른 인물인 세자빈 장씨(1680~1701)의 비극적인 몰락 사건입니다.이 사건은 단순한 궁중 스캔들을 넘어, 조선 후기 정치의 이면과 유교 사회의 금기, 그리고 여성의 권력과 파멸이 교차하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1. 세자빈 장씨는 누구인가?세자빈 장씨는 영조의 생모였던 숙빈 최씨와는 다른 인물입니다.그녀는 숙종의 둘째 아들, 경종(훗날의 왕)의 정비로 책봉된 여인입니다.양반가 출신으로 지적이고 침착한 성품으로 평가받았지..
조선 후기, 민중의 꿈과 분노가 만난 이름 – 장길산의 난(1693~1698) 조선 후기, 민중의 꿈과 분노가 만난 이름 – 장길산의 난(1693~1698)조선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사회적 혼란과 저항의 상징, 바로 ‘장길산의 난’을 아시나요? 흔히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사화와 같은 왕권과 관료 집단의 대립에 집중하지만, 사실 가장 치열했던 싸움은 피지배층 민중의 일상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전설로만 전해지기도 하는 장길산과 그가 주도한 난의 진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조선 사회의 민낯을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1. “전설인가, 실존인가?” – 장길산이라는 인물장길산은 실제 조선 후기(숙종 대) 기록에도 등장하는 실존 인물입니다.그는 평안도 출신으로, 원래는 양반이 아닌 평민 혹은 천민 계층이었으며, 신분 사회의 벽과 부당한 수탈에 분노한 인물이었습니다.민중의 편에..
함경도에서 일어난 대반란, 이시애의 난(1467) – 차별의 뿌리를 묻다 함경도에서 일어난 대반란, 이시애의 난(1467) – 차별의 뿌리를 묻다조선시대 수많은 반란 가운데 ‘이시애의 난’은 유독 오랫동안 그 여파가 남은 사건입니다.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함경도라는 변방에서 시작된 이 대규모 반란은, 조선 왕조의 권력을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함경도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시애의 난이 왜 발생했는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리고 조선 사회에 남긴 상흔과 교훈은 무엇인지 깊이 있게 다루어보겠습니다.1. 왜 하필 함경도였을까? – 중앙과 변방의 충돌함경도는 고려 말부터 토착 호족들이 강한 세력을 쥐고 있던 지역이었습니다.중앙 정부가 쉽게 다스릴 수 없는 험준한 지형,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지역 내에서 형성된 권력 구조는 조선 초기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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