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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이야기

세종대왕과 대마도의 조약, 계해약조(1443) – 조선과 왜(일본) 사이의 국경, 교역, 그리고 현실적 타협

세종대왕과 대마도의 조약, 계해약조(1443) – 조선과 왜(일본) 사이의 국경, 교역, 그리고 현실적 타협

조선의 외교사를 돌아보면, 명나라나 청나라와의 사대외교 못지않게 ‘왜(倭, 일본)’와의 관계가 민감한 시기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왜구(왜적)의 침입과 국경 지역의 혼란은 조선 초기 내내 끊임없는 고민거리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1443년 세종대왕이 대마도(쓰시마)와 체결한 계해약조(癸亥約條)는 동아시아 해상 질서와 한일관계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계해약조의 배경, 내용, 그리고 이후 조선-일본 관계에 남긴 의미를 살펴봅니다.

세종대왕과 대마도의 조약, 계해약조(1443) – 조선과 왜(일본) 사이의 국경, 교역, 그리고 현실적 타협

 

1. 조선과 왜구, 그리고 대마도의 현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바다에는 ‘왜구’라 불리는 해적들이 들끓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일본 서부와 규슈, 그리고 대마도에서 출몰하여 한반도 해안과 중국 연안까지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조선은 건국 직후부터 왜구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삼았고, 해상 방어와 외교적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특히, 대마도는 일본 본토와도 다소 거리가 있었고, 조선과의 거리가 가까워 ‘교역’과 ‘약탈’의 경계에 놓인 독특한 지역이었습니다.
대마도주(島主)는 때로는 일본 정부 대신 조선과 교섭하고, 때로는 왜구와 한통속이 되어 불안정을 키우기도 했죠.


2. 조선의 적극적 대응과 세종의 해상 정책

세종은 즉위 초기부터 왜구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 1419년(세종 1년), 이종무가 이끄는 대규모 정벌군이 ‘쓰시마 정벌(기해동정)’을 단행, 대마도를 직접 공격해 왜구의 본거지를 초토화했습니다.
  • 그러나 대마도와 일본 정부, 그리고 조선의 이해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왜구 소탕 이후에도 평화로운 해상 질서를 유지하려면 교역과 통제라는 현실적 타협이 필요했죠.

3. 계해약조(1443)의 체결 – 교역과 통제의 절충안

1443년, 세종은 대마도주와 직접 협상에 들어가, 역사상 중요한 계해약조를 체결합니다.
계해(癸亥)는 그해의 간지(十干十二支)이며, ‘약조’는 약속이나 조약을 뜻합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공식 교역 허용: 대마도주는 1년에 50척(後에 200척)까지 조선에 공식적으로 교역선을 파견할 수 있도록 허용받음.
  • 교역의 제한: 사적인 불법 거래(밀무역), 왜구의 약탈 행위는 철저히 금지함.
  • 질서 유지 책임: 대마도주는 조선 연안의 왜구 단속 및 약탈 방지의 책임을 지며, 교역을 통한 이익 보장과 평화 유지를 약속함.
  • 교역 조건: 조선은 쌀, 콩, 직물 등 필요한 물자를 대마도에 제공하는 대신, 대마도는 일본산 상품(구리, 후추, 염료 등)을 조선에 수출할 수 있게 됨.
  • 외교적 서열: 대마도주는 일본 내에서 조선과의 교섭 권한을 갖되, 조선 정부의 통제를 받는 실질적 ‘속국’처럼 취급.

이로써 대마도와의 실질적 ‘무역 협정’이자 ‘해상 질서 관리 조약’이 성립된 셈입니다.


4. 조약의 영향과 한계 – 현실과 타협, 그리고 지속된 긴장

계해약조는 조선-일본 사이의 공식적 교역 루트를 열어줌과 동시에,
대마도주에게 왜구 통제와 해상 치안의 책임을 넘기는 ‘현실적 타협’이었습니다.

  • 교역선을 제한하면서 무분별한 왕래와 밀무역, 약탈을 줄였고,
  • 대마도주는 공식적 교역권을 얻으면서 경제적 이익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평화가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왜구는 여전히 조약을 어기고 약탈을 일삼았으며,
조선과 대마도, 일본 본토 간의 정치적 긴장은 계속됐습니다.

특히 세종 사후, 조약이 지켜지지 않거나 교역선 수의 문제, 밀무역, 국경 도발 등이 되풀이되면서
조선-일본 관계는 긴장과 평화가 반복되는 불안정한 상태를 이어가게 됩니다.


5. 계해약조가 남긴 역사적 의미

계해약조는 단순한 ‘무역 조약’을 넘어,

  •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해양 질서의 실질적 구도를 새롭게 짠 계기였습니다.
  • 약탈과 무역, 속국과 자주권, 실리와 명분이라는 외교의 복합적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 이후 조선과 일본은 대마도를 통한 공식 교역을 수백 년간 이어가면서,
    근대 이전 한일관계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집니다.

6. 오늘날에 주는 시사점

계해약조는 지금의 국제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힘과 현실, 이익과 명분 사이에서 어떻게 타협점을 찾고,
지역의 평화와 상생을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이 왜구 문제에 단순히 무력으로만 대응하지 않고,
‘조약’과 ‘교역’이라는 도구로 외교와 경제, 치안까지 통합적으로 풀고자 했던 선택은
오늘날 동북아 외교에도 여전히 참고할 만한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