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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평안도 차별 정책 – 제도적 소외가 낳은 갈등의 씨앗

우리의투자 2025. 7. 25. 07:00

조선 후기 평안도 차별 정책 – 제도적 소외가 낳은 갈등의 씨앗

조선 후기, 조선의 북서부 지역인 평안도는 단순한 ‘변방’이 아니었습니다. 대동강과 압록강, 청천강을 따라 풍요로운 곡창지대와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곳이었고, 실학자 박지원·박제가를 비롯해 뛰어난 인재들이 다수 배출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신지’ 하나만으로 차별받은 곳, 바로 평안도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 후기 평안도에 적용된 제도적 차별과 그것이 불러온 사회적 갈등의 실체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조선 후기 평안도 차별 정책 – 제도적 소외가 낳은 갈등의 씨앗

 

1. 왜 평안도는 차별의 대상이 되었는가?

 

조선 초부터 평안도는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한 ‘변방’으로 여겨졌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압록강을 경계로 청나라(명나라 포함)와 맞닿아 있었고, 역사적으로는 고구려의 중심지였던 만큼 문화적, 정서적 이질감도 존재했습니다.
더불어 고려 말~조선 초 이 지역을 장악했던 토착 호족 세력은 중앙집권을 추구하던 조정과 여러 차례 충돌했고, 대표적으로 이시애의 난(1467)이 평안도에서 발생하며 ‘반역의 땅’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조선 정부가 ‘신뢰할 수 없는 지역’으로 평안도를 인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후 300년 이상 이어지는 차별의 명분이 되었습니다.


2. 평안도 출신은 과거 시험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조선 시대의 과거제도는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계층 상승, 출세, 정치 참여의 거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평안도 출신 수험생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했습니다.

  • 음서제, 천거제 등의 인맥 경로가 차단
  • 초시(지역 예선) 합격 후, 중앙 시험에서 번번이 낙방
  • 출신 지역을 이유로 점수를 깎거나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음

공식 문서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암묵적인 지역 배제가 수험생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인식되고 있었고, 실제로도 평안도 출신 고위관료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3. 실학자들의 분노 – 지역차별을 고발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지역차별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평안도의 인재들을 두고 "그 재능과 실력이 중부인보다 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출신지 때문에 쓰이지 않는다"고 언급합니다.
또한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평안도 출신들이 조선의 산업·교역·문화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며, 출신지에 따른 인사 차별이 나라의 인재 손실로 이어진다고 꼬집었습니다.


4. 제도적 차별이 낳은 갈등 – 홍경래의 난의 배경

평안도에 대한 차별은 단순한 불만을 넘어 현실적인 저항으로 폭발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홍경래의 난(1811~1812)입니다.
이 난은 단순한 민란이 아닌, 차별받은 지역민들과 중소 지주, 몰락한 양반들이 주도한 체제 저항 운동이었습니다.

홍경래는 과거 시험에서 지역 차별로 인해 번번이 낙방한 경험이 있었고, 평안도의 사회경제적 불균형과 중앙정부의 차별정책을 지적하며 민심을 규합했습니다. 그의 외침은 단순한 ‘반란’이 아닌, 조선 후기 평안도인의 억눌린 분노가 폭발한 결과였습니다.


5. 평안도 차별의 종말과 현대에 남은 뿌리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도적 지역차별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심리적, 문화적 차별 의식은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근대 이후에도 평안도 출신에 대한 ‘이질감’, ‘신뢰 부족’의 편견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고, 북한과의 분단 이후에는 정치적으로도 ‘이북 출신’에 대한 편견이 일부 계승되기도 했습니다.


6. 우리는 평안도에게 빚지고 있다

조선 후기 평안도 차별 정책은 단순히 지방에 대한 소외가 아니라, 제도와 문화가 어떻게 한 지역을 배제하고 낙인찍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더불어 조선이라는 나라의 인재 시스템이, 출신지를 이유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스스로 잘라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날 지역 차별이 사라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지역감정과 차별은 존재합니다. 그 뿌리는 어쩌면 조선에서 시작된 제도적 배제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누구도 출신지로 인해 소외받지 않는 사회, 능력과 인격이 평가받는 사회를 향해, 과거의 역사를 거울삼아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