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을해당론(1755) – 영조 시대 노론과 소론의 피바람

우리의투자 2025. 7. 25. 00:30

을해당론(1755) – 영조 시대 노론과 소론의 피바람

조선 후기 영조(英祖) 시대, 왕권을 둘러싼 정치 갈등은 사색당쟁(四色黨爭)이라는 이름으로 극단까지 치달았습니다. 그 가운데 1755년, 한 해에만 수많은 정적이 제거된 대사건, 바로 을해당론(乙亥黨論)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은 ‘정치적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건 숙청’이었으며, 조선 후반기 정치 지형과 영조 치세의 본질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을해당론의 배경과 전개, 그 여파와 오늘날 남는 의미까지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조선 정국의 대숙청, 을해당론(1755) – 영조 시대 노론과 소론의 피바람

 

1. 영조 시대의 정치 풍경 – 노론과 소론, 그리고 왕권

18세기 조선은 정권을 잡은 노론과 이에 맞서는 소론, 그리고 남인·북인 등 다양한 당파가 경쟁하던 시대였습니다.

  • 노론은 세종·숙종 때부터 권력의 중심에 있었고, 사대부와 신진관료, 실학자 등이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 소론은 중간적 입장에서 노론의 전횡을 견제하며, 왕실 내 여러 갈등과도 긴밀히 얽혀 있었습니다.

영조는 숙종의 아들로, 즉위 초부터 왕권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숙종)의 ‘경종-영조’ 왕위 계승 문제, 이인좌의 난(1728) 등으로 노론과 소론 사이엔 이미 깊은 불신과 원한이 쌓여 있었습니다.


2. ‘탕평책’의 이면 – 명분과 생존이 뒤엉킨 궁중

영조는 표면적으로 ‘탕평책(蕩平策)’이라는 공평한 인재 등용 정책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왕권 강화를 위해 주요 당파를 교묘하게 견제하며 균형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의 무게추는 점점 노론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 영조는 즉위 초에는 소론·노론을 골고루 기용하며 균형을 잡았으나,
  • 점차 노론의 신뢰와 힘에 더 크게 의지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소론 내부 일부 인사들이 영조의 정책이나 노론 중심의 인사에 불만을 품고 반발하게 되고,
특히 ‘경종 독살설’, 왕실 관련 음모론 등이 번지면서 정국은 다시 요동치게 됩니다.


3. 을해당론(1755)의 발단 – 권력의 불안, 숙청의 시작

1755년, 영조는 갑작스럽게 소론 측 인사들의 ‘역모 혐의’를 들춰내며,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합니다.
이는 단순한 반대파 제거가 아니라, 노론 일파가 정적을 완전히 몰아내고 영조의 왕권을 절대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의도가 깔린 정치적 폭풍이었습니다.

  • 당시 소론의 주요 인사들은 역모죄로 몰려 처형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됩니다.
  • 대표적으로 이간, 이재, 김치(소론 명문가 출신) 등이 희생됐고,
  • 소론은 사실상 정계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노론 일파가 정권을 독점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두고 후대에는 ‘을해사옥(乙亥邪獄)’이라고도 불렀습니다.


4. 숙청의 과정과 사회적 충격

을해당론은 단순한 정적 제거가 아니라,
가족, 문중, 지역사회 전체를 뒤흔든 피바람이었습니다.

  • 수십 명의 관리와 학자, 지방 사대부들까지 연좌제에 걸려 피해를 입었습니다.
  • 영조는 왕권의 안정, 정국의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정적의 씨를 뿌리 뽑는’ 공포정치의 일면이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조정은 한동안 극도의 불신과 두려움, 침묵에 휩싸였고,
백성들 역시 조정의 권력투쟁과 숙청의 피비린내를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5. 영조의 의도와 노론의 득세 – 그 이면의 긴장

을해당론 이후, 영조는 노론을 정권의 주축으로 삼아 정국을 이끌게 됩니다.

  • 노론 일파는 절대적 권력을 손에 쥐었고, 조선 후반의 정치, 경제, 사상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 하지만, 소론 등 타 당파의 반발과 불신은 지하에서 계속 꿈틀거렸고,
  • 후대에 이르러 ‘사도세자 사건’, ‘정조 즉위’ 등에서도 당파의 그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탕평책의 본질 역시,
‘모든 당파를 포용한다’는 이상보다, ‘위협되는 세력을 견제하는 도구’로 작동한 측면이 많았습니다.


6. 마무리 - 당파와 정적, 그리고 포용의 한계

을해당론은 한국 정치사에서 ‘당파 갈등’이 얼마나 쉽게 극단적 숙청과 사회적 상처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 겉으론 ‘국가 안정’과 ‘개혁’을 내세우지만,
  • 실제론 권력욕과 이념, 그리고 생존을 위한 집단적 선택이 때로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영조 시대의 치열했던 당쟁, 숙청, 그리고 탕평책의 한계를 되짚어보며
오늘날 우리가 진정한 포용과 협력, 그리고 건강한 정치 문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파 싸움 또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