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품은 군주, 인간 세종을 만나다
백성을 품은 군주, 인간 세종을 만나다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면모와 백성에 대한 깊은 애정
조선 제4대 임금 세종(世宗, 재위 1418~1450)은 한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군주로 손꼽힙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과학기술을 장려하며, 조세 제도를 개혁한 그의 업적은 위대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그가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제도나 발명의 결과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세종의 인간적인 따뜻함, 즉 ‘인간 세종’의 모습입니다.
아픔을 공감한 임금
세종은 백성의 고통을 그저 정치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세를 줄이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 여겼고, 춥고 배고픈 백성의 삶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였습니다. 실제로 흉년이나 질병이 돌 때면 궁궐 안에서도 기쁨을 자제하고, 금주령을 내리거나 연회를 열지 않는 모습도 자주 보였습니다.
한 예로, 세종은 유난히 자연재해에 민감했습니다.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백성들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직접 기우제를 올리고, 나라의 물자를 풀어 백성을 구휼했습니다. 어느 해에는 물난리로 곡식이 무너졌다는 보고를 받자 “궁궐 창고의 곡식도 내어주고, 내 수레도 빌려 백성을 돕게 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병약한 몸, 강한 마음
세종은 평생 지병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중풍과 당뇨, 시력 저하 등으로 끊임없는 통증에 시달렸지만, 집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과로로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직접 보고를 읽고, 토론을 주도하며 국정을 챙겼습니다.
의관들이 하루라도 일찍 쉬라고 간청했을 때, 세종은 “내가 아파서 누워있는 사이에도 백성은 굶고 있다”라며 가슴 아픈 심정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이는 그가 임금이기 이전에,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한 인간이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자식에게조차 엄격했던 부정(父情)
세종은 자식들에게도 애정을 품었지만, 정치적 판단에서는 냉정했습니다. 특히 둘째 아들 수양대군(훗날 세조)과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권력 다툼이 우려되자, 이들을 견제하는 조치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식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간적인 교류를 지속했고, 자식의 실수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질책하면서도 마음 한켠엔 늘 연민을 품었습니다. 세종은 외척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딸들의 혼사에도 신중했으며, 자식들이 특권 의식을 갖지 않도록 훈계하기도 했습니다.
신하를 품은 리더십
세종은 신하를 믿고, 때로는 그들의 반대 의견조차 수용하며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장영실, 정인지, 최만리, 허조, 이천 등 수많은 인재들이 그의 곁에서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종의 포용적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하의 건의를 ‘비판’이 아니라 ‘조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장영실이 자격루 제작 도중 오류를 범했을 때, 그를 처벌하기는커녕 다시 기회를 주어 재능을 이어가게 했습니다. 인간을 믿고, 실수를 용서하며 더 큰 일을 맡기는 이러한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도 귀감이 됩니다.
소리 없는 백성의 목소리를 듣다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의 업적 중 단연 으뜸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이 업적의 진정한 가치는 소외된 백성을 향한 진심에서 비롯됩니다. 당시 조선은 유교적 엘리트 지식인 중심의 사회였고, 백성은 한자를 알지 못해 법을 모르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종은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 ‘훈민정음’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남긴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는 “내 백성이 말하고자 해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국민의 언어권과 표현권을 중요하게 여긴 인본주의자였던 셈입니다.
웃음과 눈물을 아는 군주
세종은 풍류와 예술을 즐겼으며, 음악과 시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거문고와 가야금 연주를 즐겼고, ‘용비어천가’를 직접 짓는 등 문학에도 능했습니다. 때로는 궁중에서 악사들과 함께 음악을 감상하며 피로를 풀었고, 신하들과 시를 나누며 소통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히 예술을 향유한 데 그치지 않고, 백성의 문화 생활 역시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세종은 백성들의 전통 음악을 보존하고, 농악과 민속 음악이 억압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인간 세종, 지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오늘날 세종을 돌아보며 느끼게 되는 가장 큰 감동은 그가 군주의 위치에서 한 인간으로서 백성을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결코 완벽한 신이 아닌, 아픔을 알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정치를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세종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단지 리더십의 효율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감수성, 그리고 공익을 위한 진정성 있는 자세입니다.